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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계획하면서 제일 고민이었던 게 분만병원 전원 문제였다. 송파 잠실 일대에 병원 두 군데 연락을 해봤더니 막달검사(34~35주차 시행) 전이면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기존 수지 병원의 담당의와도 상의를 했더니 결국엔 산모가 결정할 일이라고 전원을 희망하면 진료기록은 모두 공유가능하다고 했다.

담당의의 담담하고 차분한 게 좋았고 미리 겁을 준다거나 크게 걱정을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전반적으로 큰 이슈사항은 없는 임신 기간인 것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녀 특유의 안온함이 느껴졌다. 이사도 예정일 일주일 앞두고 하게 되었고 결국 전원은 하지 않고 기존 병원에 정기검진을 가는 날이 왔다.

원래는 집 앞이라 진료시간이 첫 타임인 9시~9시 20분이었다. 운전해주는 남편은 연차를 쓰게하고 송파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있어서 11시 진료를 기다렸다. 남편은 임신기간 동안 이번이 세 번째 동행이었다. 정밀검사, 입체초음파, 마지막 정기검진 이렇게 세 번 제외하고는 나 홀로 다녔고 그게 편했다.

남편도 함께 초음파부터 보는데 3.5~3.6kg 로 재진다는 거다. 분명 일주일 전 검사에서는 3.0~3.1kg였는데 마지막 주에 4~500g이 늘었다고? 나는 덜컥 겁이났다. 남편도 나도 첫째라 태어날 때 몸무게가 2키로 대였다. 남편을 검사실에서 내보내고 내진을 하시더니 자궁문이 3cm가 열렸다고 했다. 이미 진행이 되고 있었고 진통이나 심한 수축은 없었기에 다음주 월요일에 유도분만을 예약하거나 오늘 촉진제를 맞고 분만 시도를 할 수 있다 했다.

집으로 가서 자연 진통을 기다리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런데 담당의가 오늘 당직근무 당번이란다. 자궁경부도 원래 짧은 편이었고 부드러워져서 금방 나올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미 진행은 되고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도 진통이 오거나 양수가 터져 빠른 시일내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할 수도 있다고. 무엇보다 아기 크기가 갑자기 늘지 않았나. 그래서 애초에 생각도 않았던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딱 한 자리 남은 가족분만실에서.

남편의 얼굴은 당황 그 자체였다. 난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 남편보다 차분한 편이다. 어차피 내가 치뤄야 할 일 내가 결정해야 했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입원 병실 타입을 정하란다. 1인실 A부터 C타입이 있고 보험 적용되는 다인실이 있다. 당연히 다인실을 선택했다. 남편은 상주할 수 없고 하루에 면회도 15분 내지는 30분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수지 오피스텔에서 남편이 지내면 되니 그건 괜찮았다. 무슨 상황이 생기면 굳이 남편의 수발을 받으려고 일박당 2~30만원을 쓰고 싶지 않았다.

분만센터에 입장해서 기본정보를 작성하고 비급여 항목인 열상방지 주사와 바르는 겔 구입여부를 묻고 무통주사 투여 여부도 확인했다. 무통주사만 놔달라고 했다. 가족분만실은 넓었다. 침대와 쇼파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있었다. 환복하고 수액을 맞을 관을 손목에 깊숙이 꽂고 항생제 테스트를 했다. 관장도 했고 10분 중 7분밖에 못 참았지만 남편은 본인보다 잘했다고 격려해줬다. 촉진제 투여 후 시간마다 체크했지만 아기 위치가 골반위에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머리가 골반쪽으로 진입을 해야하는데 산모 골반크기와 아기 머리 크기 및 위치가 다 맞아야만 분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나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한 두 시간마다 내진을 하고 아기 위치만 확인할 뿐 별다른 진행상황이 없었다. 자궁문은 이미 5~6센티가 열렸지만 소용없었다.

무통주사관은 삽입을 해뒀는데 주사를 안 준다. 물론 나도 맞으면 진전이 더딜까봐 요청하지 않은 것도 있다. 다른 산모들은 3센티 열리면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괜찮아서 간호사들이 놀라했다.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 한참을 내진하더니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아기 위치는 여전히 내려오지 않은 상태.

분만실 입실이 12시인데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무통 주사를 맞았다. 등허리가 시원해지면서 주사 약이 몸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나서 얼마가 흘렀을까, 왼쪽 허벅지 앞부분이 심하게 저려왔다. 남편에게 주무르도록 시키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 간호사 호출을 했다. 무통주사 때문이라고 했다. 한참이 지나도 통증은 가시지 않고 오히려 진통처럼 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다시 한 번 호출했다. 한참 지나서야 와서 내진을 해보더니 아기 머리가 내려왔다고 했다. 힘주는 연습하고 빠르면 4시 안에 낳자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괴로웠다. 숨을 들이마시고 참으라고 했다. 10초 이상을 견디라하면서 내 배를 눌러 아기를 더 아래로 오게 하는 방법을 수차례 반복하는데 내가 숨을 참지 못해 계속 멈춰졌다. 아기도 나도 간호사 본인들도 위험해진다는 협박성(?) 멘트를 계속해서 내 멘탈이 흔들렸다. 지금 호흡 잘 하지 못하면 수술해야한다는 얘기도 함께.

그렇게 다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켜 호흡흘 한지 한참 지나 아기 머리가 걸린 것 같았다. 이후 담당의가 분만실로 들어오고 힘을 세 차례 주고 빼라더니 아기가 나왔다. 남편은 그제야 분만실로 들어왔다. 가족분만실이긴한데 남편은 첫과 끝만 함께 한 것 같다. 눈물이 계속 났다. 아프고 서럽고 무서웠어서.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수술 스크럽에 싸서 내 팔에 안겨주는데 울지 않고 고요했다. 3.52kg, 52cm 로 건장한 사내아를 내가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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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은 옛말”… 2040년, 시니어 레지던스가 새로운 주거문화가 되다

서기 2040년 8월 5일 | 경기미래도시일보

 

“실버타운은 돈 많은 사람들만 가는 곳 아닌가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2040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시니어 레지던스는 일부 부유층을 위한 고급 시설이 아니라,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고려하는 주거 형태가 되었다.

 

고령층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사회와 경제의 중심도 달라졌다. 건강관리, 주거, 여가, 금융, 교육 등 고령층의 생활과 관련된 이른바 ‘실버 이코노미’가 주요 산업으로 성장했다. 오래 사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자 사람들의 관심도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옮겨갔다.

 

예전의 실버타운이 의료와 돌봄 중심이었다면, 2040년의 시니어 레지던스는 건강관리와 여가, 배움, 일, 이웃과의 관계를 함께 담아낸 생활공간에 가깝다.

 

AI생성 '시니어 레지던스 이미지'

중산층도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집

과거에는 입주하려면 수억 원의 보증금이 필요해 쉽게 꿈꾸기 어려웠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이 다양한 장기 임대 방식과 금융상품을 마련하면서 입주 문턱이 낮아졌다. 이제는 은퇴를 앞둔 평범한 직장인도 자신의 소득과 생활방식에 맞는 시니어 레지던스를 찾아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입주 이유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병원과 가까워서, 누군가는 취미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서 이곳을 선택한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혼자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시니어 레지던스는 몸이 불편해진 뒤에 들어가는 시설이 아니라, 건강할 때부터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집이 되었다.

AI는 사람을 대신하기보다 일상을 돕는다

2040년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활 속에 훨씬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집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을 관리해 주는 ‘AI 주치의’가 있어 수면, 심박수, 혈압, 움직임의 변화를 살핀다. 평소와 다른 징후가 나타나면 입주자에게 먼저 알려주고, 필요한 경우 가족이나 의료진과 연결한다.

 

가사 로봇은 청소와 세탁, 식사 준비를 돕고, 휴머노이드 로봇은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거동이 불편한 입주자의 이동을 보조한다.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센서는 낙상 위험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한다.

 

일부 레지던스에서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인 BCI를 재활과 의사소통 보조에 활용하고 있다. 초연결 통신망을 통해 집, 병원, 가족의 기기가 실시간으로 이어지면서 응급상황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술이 사람을 완전히 대신한 것은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살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 실감 나는 풍경이다.

노인만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2040년의 시니어 레지던스는 도시 외곽에 고립된 형태보다 지하철역, 병원, 공원, 상업시설과 가까운 생활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같은 건물이나 단지에는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아이를 키우는 가족이 함께 살기도 한다.

 

은퇴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청년은 어르신에게 스마트기기 사용법을 알려준다. 맞벌이 부부가 급한 일이 생겼을 때 같은 동네 어르신이 잠시 아이를 돌봐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만남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이름과 사정을 아는 이웃이 된다.

 

세대가 섞여 살면 갈등이 늘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오래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시니어 레지던스에는 조용한 휴게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는 개인 건강 상태에 맞춘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외국어나 그림을 배운다. 어떤 사람은 은퇴 후 작은 사업을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미뤄두었던 악기를 배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을 위한 공간,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주거단지, 텃밭과 친환경 식생활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동체도 생겨났다.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곳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 살 곳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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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름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윗집 부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70대 오경직이 윗집으로 이사 온 신혼부부와 교류하며 아이를 낳아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저출생, 고령화, 세대 갈등 등 경기도 도민참여단이 다루는 의제들이 소설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윗집 부부(2026), 황보름 저

 
예정일이 성큼 일주일 뒤로 다가오며, 곧 첫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을 만났다. 저출생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하는 통계였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말이 자꾸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이번 소개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어가보려 한다.

'봄'과 '가을'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솔직히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막연히 언제쯤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곧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삶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걸 새삼 느낀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 요즘 세대를 대표하는 '봄'과 '가을'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이들이 회사에서 겪는 경쟁, 동료와 조직 사이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갈등들은 과장되거나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최근까지도 회사에서 겪어온 일상 그 자체였다.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선택이 신념이나 이상보다 먼저 '지금 당장의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가'라는 훨씬 현실적인 질문 앞에 놓인다는 걸, 소설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봄과 가을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따라가게 만드는 방식이어서 더 와닿았던 것 같다.

'경직'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남는 거리감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대한민국의 인구 소멸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노년의 인물 '경직'이 있다. 그는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에게 다가가, 아이를 낳아보라고 권한다.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나도 이해가 된다. 그가 살아온 시대, 그가 짊어져온 책임감을 생각하면 그 걱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동시에, 나 역시 부모님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온도차를 느낄 때가 많다. 경직이 봄과 가을을 설득하려는 방식—인구 문제라는 국가적 차원의 걱정을 개인의 선택 앞에 내미는 방식—을 보면서, '이해는 되지만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는' 세대 간의 거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소설은 이 거리감을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경직의 가족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부딪히고 오해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세대 갈등이란 결국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걸 보여줄 뿐이다.

아기 선물


아이를 낳으라는 말보다 먼저 필요한 것

곧 아이를 낳을 사람으로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지점은, 이 소설이 출산을 권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말 한마디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 삶—양육과 돌봄을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삶—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걸, 위아래 층을 오가는 작은 교류들을 통해 소설은 조용히 이야기한다. 나 역시 앞으로 마주할 돌봄의 무게를 생각하면, 국가가, 이웃이, 가족이 그 삶을 얼마나 함께 봐주는지가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도민 여러분께 이 책을 권한다

저출생과 고령화, 세대 갈등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다. 『윗집 부부』는 이 무거운 주제를, 위아래 집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문학으로 만들어냈다.
요즘 세대의 현실적인 고민에 공감하는 분, 부모님 세대와의 온도차를 느껴본 분, 그리고 결혼과 출산, 돌봄이라는 화두를 통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만나보시길 바란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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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출산,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한 가정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 안팎에서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업무 공백, 개인의 편의, 혹은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는 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실례로 POSCO는 '육아몰입기간'이라는 명칭을 채택해서 쓰고 있는데 그 시간 전체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말이고, '돌봄출근'은 그 시간 안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말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아기와 엄마 AI 생성 이미지

 

육아휴직을 다시 부르는 말, '돌봄출근'

 

'돌봄출근'은 일을 쉬는 게 아니라, 다른 일터에 출근하는 것. 회사 대신 아이 곁으로 출근한다는 시각이다. '휴직'이 빠지는 것이라면, '출근'은 향하는 것이다.

 

'휴직'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멈추거나 빠지는 느낌을 준다. 반면 '출근'이라는 말은 책임을 가지고 어딘가로 향하는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 안전을 돌보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이유는 육아휴직이 결코 '쉬는 시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돌보며, 감정을 살피고 생활을 만들어가는 일은 분명한 책임과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직장에서의 업무만 노동으로 인정받는다면, 돌봄의 가치는 쉽게 보이지 않게 된다. '돌봄출근'이라는 말은 그 보이지 않던 시간을 사회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표현이다.

 

물론 말을 바꾼다고 현실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에 분명히 영향을 준다. '육아휴직'이 일에서 잠시 빠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면, '돌봄출근'은 아이와 사회를 위해 또 다른 책임의 자리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하는 시간 AI 생성 이미지

 

육아는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함께 존중해야 할 돌봄의 노동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선택한 부모는 쉬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곁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이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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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현실

 

2026년 6월, 일본 교토부 야와타시의 시장 가와타 쇼코가 조용한 선언을 했다.

"출산 전 8주, 출산 후 8주, 총 16주 간의 출산휴가를 사용하겠습니다."

 

https://www.bbc.com/news/articles/c1mykzj15xno

 

A mayor in Japan announced her maternity leave - and got the whole country talking

In the face of criticism, Shoko Kawata, 35, says she loves her job and is proud to be taking time off to have a baby.

www.bbc.com

 

일본 여성 지방자치단체장 최초의 출산휴가 선언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축하보다는 논쟁이 먼저였다. SNS에서는 "납세자의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일부에서는 "사퇴하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저출산 위기를 국가적 과제로 외치는 나라에서 정작 현직 시장의 출산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지방 시장의 개인 사정이 아니다. 저출산이라는 공통의 위기를 마주한 한국과 일본, 두 사회가 일·가정 양립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일본의 제도: 법은 좋은데, 현실은?

 

일본은 제도적으로 꽤 탄탄한 육아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출산휴가는 출산 전 6주, 출산 8주(총 14주)가 법으로 보장된다. 육아휴직은 자녀가 만 1세(최장 2세)가 될 때까지 부모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2022년에는 '산후 파파 육아휴업(남성판 출산휴가)'이 신설되어, 아이 출생 후 8주 이내에 최대 4주간 남성도 유연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됐다.

 

가와타 시장 인터뷰 사진(BBC)

 

그러나 가와타 시장의 사례에서처럼, 선출직 공무원은 이 법적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에게는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별도 규정이 없다는 뜻이다. 가와타 시장의 선언이 '역사적'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24년 기준 일본 전체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처음으로 40%를 돌파했고, 1,000명 이상 대기업만 놓고 보면 46%에 달한다. 하지만 '취득률'과 '실제 사용 기간'은 별개 문제다. 취득자의 60%가 1개월 미만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70%가 1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원한다고 답했지만, 현실과는 괴리는 여전히 크다.

 

성평등 지수도 발목을 잡는다. 세계경제포럼의 2025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서 일본은 148개국 중 118위로, G7 국가 중 최하위다. 전국 지방의회 여성 의원 비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중의원 여성 의원 비율도 15% 미만이다.


한국의 제도: 기간은 길지만, 쓸 수 있나?

 

한국의 출산·육아 지원 제도는 주요국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기간이 길다.

 

출산전후휴가는 90일(다태아 120일)로, 출산 전후로 나눠 사용할 수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2025년 20일(유급)으로 확대됐다. 육아휴직은 자녀 만 8세(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까지 부모 각각 최대 1년 6개월(2025년 개편 기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선출직 공무원은 출산휴가 법적 보호 대상 밖이다.

 

제도가 좋아도 '쓸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24년 조사에서 '눈치와 부담으로 육아휴직을 1-3개월밖에 쓰지 못했다'는 응답이 35%에 달했다.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24% 수준(2023년 기준)으로, 일본의 40%대에 비해 아직 낮다.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도 크다. 대기업 직원은 쓸 수 있어도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7월 마지막 주, 나는 출산전후휴가를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한다'는 표현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출산을 앞두고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이 휴가를 준비하며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법이 보장한 권리를 쓰면서도 죄책감이 드는 이 묘함 - 아마 출산을 앞둔 많은 직장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남편은 배우자 출산휴가에 해당사항이 없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면 쓸 수 없다. 출산전후휴가 90일이 끝나면, 개인 연차까지 모두 붙여 11월 마지막 주에 복직할 계획이다. 그 4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볼 주체는 결국 나 혼자다. 앞으로도의 육아가 전쟁이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가와타 시장의 9월 출산을 앞두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에서 "안심하고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그 한 문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동등하게 해당되는 말이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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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니와치애

광고 및 비즈니스 문의는 ad@elbacorp.com 강연 및 개인 문의 메일은 miracleguy-007@daum.net

www.youtube.com

 

 

소아조로증으로 남들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삶을 살아온 홍원기 군과 가족의 이야기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과거 `인간극장`에서 소개된 모습부터 현재 유튜브 채널 <욘니와치애> 를 통해 보여주는 일상까지, 이 가족의 이야기는 단순히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감동적인 가족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본 장면은 온 가족이 미국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해 원기 군의 5K 레이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혼자였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을 가족과  보스톤 한인 커뮤니티가 함께 응원하고 도우며 가능하게 만든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장면은 돌봄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함께 지지하고 밀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저


여기에 김애란 작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도 함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대수와 미라, 그리고 조로증을 앓는 아들 아름이의 이야기를 통해,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사랑과 두려움, 미안함과 책임감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 아이 앞에서는 씩씩해 보이고 싶은 마음, 하지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까지 부모의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납니다.

홍원기 군 가족의 실제 일상과 `두근두근 내 인생`의 문학적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픈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한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돌봄은 부모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대부분 가족, 특히 부모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병원 진료, 재활, 약 복용, 이동, 학교생활, 정서적 지지까지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돌봄의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처럼 보여도, 그 뒤에는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며 아이의 하루를 지켜내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습니다.

홍원기 군 가족의 콘텐츠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런 돌봄의 현실을 어둡고 비극적으로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은 원기 군의 건강과 생활을 세심하게 살피면서도, 그를 불쌍한 존재로만 대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함께 장난치고 웃으며,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역시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을 깊이 보여줍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지치며 때로는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끝까지 곁을 지킵니다. 이 작품은 돌봄이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부모의 사랑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런 콘텐츠들은 “가족이 사랑으로 다 감당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픈 아이와 그 부모가 고립되지 않으려면 가족 밖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의료비 부담, 돌봄 공백, 이동의 어려움, 사회적 편견, 부모의 정서적 소진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먼저 바꾸어야 할 시선은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를 “부담”이나 “안타까운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는 돌봄을 받는 존재이기 이전에, 자신의 감정과 꿈과 일상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돌보는 부모 역시 끝없이 희생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와 휴식과 이해가 필요한 시민입니다.

홍원기 군 가족의 이야기와 `두근두근 내 인생`은 모두 돌봄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만이 아니라 존중받는 일상이고,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원입니다. 병원과 학교, 지역사회가 연결된 돌봄 체계, 부모가 잠시 쉴 수 있는 지원,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의료·복지 제도, 장애와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홍원기 군과 소아조로증을 겪고 있는 프로제리아 친구들 출처: 욘니와치애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DL40TVqxrZR/

 

영어 격언 중에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즉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한 가정만의 책임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돌보는 부모처럼 더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더 따뜻한 시선과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돌봄은 한 가족만의 외로운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애가 있거나 아픈 아이와 그 부모가 우리 지역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돌봄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시선과 구체적인 지원이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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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출산율은 올랐다는데, 왜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출산율 2년 연속 올랐지만… '90년대생 맘' 뒤엔 씁쓸한 통계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9160



최근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반등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3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2026년 3월 출생아 수는 25,200명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4,088명, 19.4% 증가했습니다. 2026년 1분기 출생아 수 역시 75,01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9,651명, 14.8% 증가했고, 1분기 합계출산율은 0.95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0.12명 올랐습니다.

연간 수치에서도 반등은 확인됩니다. `2025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2025년 출생아 수는 25만 4,5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6,100명, 6.8% 증가했고,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에서 2025년 0.80명으로 올랐습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랫동안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야기되어 왔기 때문에,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오른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숫자를 보면서도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습니다. 출산율이 올랐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갑자기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곳으로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반등에는 최근 혼인 건수 증가, 30대 여성 인구 증가, 코로나19 시기에 미뤄졌던 결혼과 출산이 뒤늦게 나타난 영향 등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4년 혼인 건수는 22만 2천 건으로 전년보다 2만 9천 건, 14.8% 증가했습니다. 결혼이 늘어나면 일정 시차를 두고 출생아 수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출산율 반등은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좋아져서 나타난 변화라기보다, 여러 조건이 맞물려 잠시 수치가 올라간 현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든 현실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년 세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마련은 여전히 어렵고, 결혼을 하더라도 내 집 마련이나 전월세 부담은 큰 고민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돌봄 문제가 바로 현실이 됩니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졌지만,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돌봄 체계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높은 교육비와 사교육 부담도 따라옵니다.

 

최근 이런 세대 간 체감 차이를 느낀 적도 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께서 “요즘은 서울에서 아이만 낳으면 3천만 원을 준다더라. 지금이 아기 낳기 좋은 때다. 내가 아이 키울 때는 그런 지원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물론 이전 세대가 지금보다 훨씬 적은 제도적 지원 속에서 아이를 키워온 것도 사실이고, 그 고생을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대가 느끼는 어려움은 단순히 출산지원금의 유무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원금이 생겼다고 해서 집값, 교육비, 돌봄 공백,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임신·출산·육아를 둘러싼 세대 간 인식 차이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 세대에게는 “우리는 지원 없이도 키웠다”는 경험이 있고, 지금 세대에게는 “지원이 있어도 삶의 기반이 불안하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출산율이라는 숫자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몇 명이 태어났는가”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봐야 합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주거와 경제적 불안 때문에 망설이고, 누군가는 낳은 뒤 감당해야 할 돌봄과 교육의 무게 때문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또 누군가는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모든 선택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나 의지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구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에 대한 문제입니다.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을 탓하거나, 출산율이 올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안심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리고, 원한다면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주거, 돌봄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직장 문화,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돌봄, 과도한 사교육 경쟁을 줄이는 교육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출산을 장려하는 말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삶이 외롭고 버거운 일이 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AI 생성 신생아 사진


출산율 반등은 분명 반가운 신호입니다. 하지만 그 수치만으로 우리 사회가 충분히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숫자 너머에는 한 사람의 불안, 한 가정의 고민, 한 세대의 현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산율이 올랐다는 결과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지,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출산율이 잠깐 반짝이는 수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의 기본 조건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 그 변화가 있어야 출산율 반등도 진짜 희망의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료 출처: [국가데이터처 2026년 3월 인구동향](https://www.kostat.go.kr/board.es?act=view&bid=204&list_no=445260&mid=a10301010000), [국가데이터처 2025년 출생·사망통계 잠정](https://mods.go.kr/board.es?act=view&bid=204&list_no=443686&mid=a10301020300), [국가데이터처 2024년 혼인·이혼통계](https://sri.kostat.go.kr/board.es?act=view&bid=204&list_no=435601&mid=a10301010000)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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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늘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단순하게 가르기보다, 한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중에서도 <디어 마이 프렌즈>는 특별하다. 이 드라마는 단지 나이 든 사람들의 우정이나 가족 이야기를 넘어, 세대 간 갈등과 남녀 간의 오래된 불균형,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반복되어 온 돌봄과 희생의 문제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편의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부딪힌다. 부모 세대는 전쟁과 가난, 생존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고, 자식 세대는 그런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또 다른 부담을 짊어진다. 하지만 같은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신들이 버텨온 세월을 알아주길 바라고, 자식은 그 사랑이 때로는 왜 상처와 압박으로 다가오는지 말하고 싶어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세대 갈등을 다룬다. 단순한 가치관 차이나 소통 부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끝내 다 알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녀 갈등 역시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중요한 축이다. 작품 속 여성들은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자신을 뒤로 미뤄온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아내로, 누군가는 엄마로, 누군가는 며느리로 살아오며 돌봄과 헌신을 너무도 당연한 역할처럼 떠안았다. 반면 그 헌신은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거나 침묵 속에서 소비되었다. 드라마는 그 희생을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쌓아온 억울함, 체념, 외로움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아프다. 문제는 몇몇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위에 가족이 유지되도록 만들어온 오래된 구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스틸컷

고현정과 고두심의 모녀 관계도 그런 구조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엄마의 상처는 엄마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딸은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다. 이해하고 싶지만 버겁고, 사랑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짐처럼 느껴지는 감정. 이 복잡한 마음은 단지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상처와 돌봄의 방식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현실과 닿아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 관계를 통해 가족 안의 갈등이 얼마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지금 다시 떠올라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여기 담긴 갈등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는 늙어가며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고, 자식 세대는 부모 부양과 자신의 생계를 동시에 감당하며 지쳐간다. 여성에게는 여전히 돌봄의 책임이 더 많이 기울고, 가족 안의 감정노동 역시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우리는 인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출산율, 고령화, 부양비 같은 숫자에 먼저 주목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준다. 누가 돌보고 있는지, 누가 희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이 어떻게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tvn 드라마 스틸컷

그래서 <디어 마이 프렌즈>는 단순히 감동적인 드라마로 남지 않는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관계의 방식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세대 갈등도, 남녀 갈등도 결국은 서로를 미워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불균형한 책임과 이해받지 못한 시간들이 오래 쌓인 결과일지 모른다. 노희경 작가는 그 복잡한 현실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끝내 사람의 얼굴로 남겨둔다. 그 점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여전히 중요한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이 드라마는 모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지 않는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고, 관계가 완벽하게 회복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끝내 안고서도, 사랑과 원망이 뒤섞인 채로도 살아낸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오래 남는 이유는 바로 그 현실감 때문이다.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끝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지 않는 드라마.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세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본 게시글은 경기도 인구정책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으며,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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